스스로 결정적 순간을 창조해
도약의 기회로 삼다!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거나, 특별한 책이나 영화를 접한 후 그것이 그 후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는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은 기업에도 찾아온다. 이러한 결정적 순간은 운명적으로 주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외부에 의해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 기업 스스로 결정적 순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며 도약하는 경우도 있다.

글. 신형덕(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스스로 창조하는 결정적인 순간

사실 중소기업들에게 있어 어떠한 상황이 결정적 순간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기업에게 납품하는 큰 공급물량 입찰에 도전하여 계약을 따내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경쟁 기업들을 물리치고 계약을 체결하면 그 기업의 매출은 훌쩍 뛰어오른다.
공급물량 계약의 기회는 대기업에 의해 주어진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이 기회가 모든 중소기업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승자의 자격은 소수의 기업에게만 허락된다.
어떠한 기업이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승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경영이론은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개념이 있는데, 바로 경로의존(path dependence)이라는 개념이다. 기업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영역은 과거에 해당 기업이 걸어왔던 경로에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어느 기업이 과거에 선택했던 어떤 경로는 그 기업의 미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자신이 걸어오는 경로에서 연속적인 후속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다른 기업들이 만날 수 없는 연속적인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당 기업이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경로의존과 모방 불가능한 경쟁력의 창출

2020년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핸드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국내 기업인 A사의 예를 들어보자. 이 기업은 1987년에 창업자와 15명의 직원으로 설립된 이래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2019년에 1조 127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본사 직원 4백여 명, 외국 근로자 3만여 명을 거느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코치,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DKNY 등 명품 핸드백 고객사와 거래하며 글로벌 핸드백 시장의 10%, 미국 핸드백 시장의 30%를 점유 중이다.
이 기업 역시 첫 번째의 결정적인 순간은 다른 많은 기업의 경우와 같이 창업자가 기존의 직장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A기업에는 극적인 스토리가 있었다. 창업자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핸드백을 제조하여 납품하던 기존의 두 개의 고객사 중 한 기업이었던 B사가 경쟁 상대였던 C사와의 관계를 당장 끊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실상 경쟁사의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에게 외주를 주는 것은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거래 비중이 높았던 B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A사는 할 수 없이 C사와 만나서 거래 중단에 대한 회의를 했다. 그러던 중 C사의 담당자가 창업을 전제로 C사와의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다.
능력 있는 회사원으로 일해 왔던 커리어를 버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기존의 기업에서 이미 수출 실적이 20배 이상 성장하는 성과를 맛보았고 경쟁이 심한 제조위탁방식(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의 시장에서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업자가 선택했던 경로는 창업이었다. 그리고 창업에 수반되는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업 이후 이 기업은 연속적인 결정적 순간을 맞이했다. 높은 임금을 감수한 국내 유명 장인의 채용, OEM에서 ODM 방식으로의 선회, 외국 생산공장 설치 등을 결정했다. 이 기업이 걸어온 성장경로는 각 단계에서는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사후에 돌이켜 볼 때 매우 일관적인 성공의 경로였다.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은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 어떤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직면할 많은 결정적 순간이 현재의 결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정적 순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 참조 자료: 유효상, 이동현(2015). 중견기업 O사의 창업과 성장, 중소기업연구, 37(1), 19-56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