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과 리니언시

2021.04. |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감옥

1. 죄수의 딜레마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전쟁수행을 위한 과학 기반의 연구를 위하여 ‘랜드’를 설립한다. 랜드에서 수행한 연구의 대부분은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랜드는 응용수학과 게임이론 연구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랜드의 고문이었던 터커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 이론을 만들게 된다.

두 명의 죄수가 있다. 두 명의 죄수는 서로 분리되어 조사를 받고 있으며, 둘 다 범행을 부인한다면 결국 혐의의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조사를 담당하는 수사관은 자백할 경우 무죄 방면을 해 줄 것이지만,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사람은 가중 처벌될 것이라고 각각의 죄수에게 제안한다.

각 죄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행동은 둘 다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수 A는 다른 죄수 B가 자백하는 경우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의 두 가지 가정을 고민하게 된다. 만약 죄수 B가 범행을 부인한다면 자신은 범행을 자백하여 무죄 방면될 것이고, 죄수 B가 자백한다 하더라도 혼자 혐의를 부인하여 가중처벌을 받기 보다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결국 죄수 A는 죄수 B의 행동에 상관없이 자백이 최적의 행동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죄수 B에게도 동일하다. 조사를 받기 전에는 둘 다 자백을 하지 말자고 약속 하지만, 결국 둘 다 자백을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다.

죄수의 딜레마란 함께 죄를 저지른 공범자들을 서로 격리한 상태에서 한 사람씩 불러 “혐의를 시인하면 처벌을 면제해 주겠지만, 혼자 부인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고 얘기할 경우 결국 가중처벌이 두려워 모두 범죄를 시인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모두가 혐의를 부인해 무죄 방면되는 최선책이 있음에도, 다른 공범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몰라 차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오래된 이론을 소환하는 이유는 리니언시 제도1) 담합사건에 연루된 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전후해 위법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검찰고발 등을 면제해주는 제도 의 발상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1) 담합사건에 연루된 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전후해 위법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검찰고발 등을 면제해주는 제도

담합과 리니언시

2. 담합과 리니언시

담합(카르텔)은 라틴어인 카르타(carta)에서 유래했다. 카르타는 휴전문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싸움을 중단하고 상생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카르텔의 어원은 고상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생산량, 영업활동, 가격 등을 통제하기 위한 사업자들의 결합을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담합에 해당하는 개념을 ‘부당한 공동행위’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담합은 기업간의 합의를 통해 가격을 인상하고 물량·지역을 배분함으로써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가와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고 보기에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담합이 적발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매출액에 상응하는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물론 검찰 고발을 통해 형사상 처벌까지 받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담합의 적발은 매우 어렵다. 암묵적인 합의의 경우 증거확보가 어렵고 은밀히 이루어지는 공동행위의 ‘합의’를 입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생명보험사의 이자율 담합 사건의 경우 대담하게도 금융당국이 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정부주관 회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합 사실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하였다는 언론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보도자료는 수시로 등장한다. 어찌된 영문일까. 리니언시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리니언시(Leniency)’는 우리말로 ‘관용’, ‘관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마치 죄를 지은 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죄를 사해주는 천주교의 고해성사와 같다. 또한 리니언시는 담합에 참여한 기업들을 ‘죄수의 딜레마’로 빠져들게 한다. 다른 기업이 언제 자진신고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앞다퉈 신고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리니언시는 1997년 국내에 처음 도입되었지만 과징금 감면기준의 불명확성 등으로 그 활용이 많지 않다가, 1순위로 자진신고한 기업에는 과징금을 전액 감면하고 2순위로 자진신고한 기업은 50%를 감면해주는 내용으로 2005년 법이 개정되면서 급격히 활성화 된다.

리니언시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평판TV 등의 가격을 담합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된 사례가 있다. 유수의 대기업이 연관된 담합이라는 점도 있지만, 한 업체가 담합을 자진신고하고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은 더 화제가 되었다. 사실상 담합을 주도하고 혜택을 누리고 있던 기업이 리니언시를 활용하여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피해가게 되면서, 부당기업에 대한 면죄부라는 비판이 고조된 것이다.

여전히 논란 속에 있지만, 리니언시를 바라보는 견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법 위반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있지만, 적발이 곤란한 담합을 자진 신고하도록 유도하고, 다른 업체의 리니언시가 부담되어 기업들이 담합을 꺼려하는 예방적 효과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공공입찰에서의 담합과 리니언시

공공조달은 수요자 중심의 시장구조를 가진 산업이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기업이라는 제한적 수요자가 존재하는 독특한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움직이는 수요, 공급의 완전경쟁시장과는 상이할 수 밖에 없고 어떤 형태로든 공공의 개입이 작동하는 산업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합의의 필요성과 효과로 인해 담합은 이러한 특수한 시장구조에서 더욱 자주 발생한다고 본다.

한편으론, 이러한 특수시장에 대하여 민간시장에 적용되는 담합의 규제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관련기관은 공공조달 분야라고 하여 다른 취급을 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리니언시 기업에 대해 과징금과 형사고발의 불이익을 면제토록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과 달리 현행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은 리니언시 기업에 대한 보호 수단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리니언시를 인정받아도 부정당업자제재등 국가계약법에 상존하는 여러 불이익 조치에는 하등의 영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기업들은 공익신고자 지위 인정과 보호라는 낯선 제도를 이용하여 우회적으로나마 처분을 면제 또는 감경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된 공공계약제도 혁신 TF는 2020년 10월 공공계약제도 3대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45개의 추진과제 중 하나로, 리니언시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감면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부정당업자제재도 감면할 수 있는 근거를 2021년 상반기 중 국가계약법 등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담합은 그 자체로서 허용되지 않으며 행위 후에 부과되는 회사의 이미지 실추 등의 손실은 때로 천문학적 수준에 이른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공동행위가 허용되어선 안될 행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공공조달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언제든 수직, 수평간 담합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관여자 모두의 혐의 부인을 최선의 방안으로 보지만, 현실에서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