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저울

직원의 행위와 계약업체에 대한 제재

2021.03. | 김앤장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여신 디케

1. 여신 디케

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디케(dike)는 ‘정의의 여신’이라 불리웠다. 디케는 최고신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 ‘질서’ 또는 ‘정도’를 상징하여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었다. 디케는 로마시대에 와서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되었으며, 오늘날 영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하게 된다.

미술작품으로서 석고상의 모델로 되어 있는 디케의 모습은 눈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 상태에서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는 판단의 공정을 위한 것이었고, 저울은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의 형평성을, 칼은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의 엄격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디케의 상이 말하고자 했던 ‘형평’이란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법의 적용과 제재에 있어서는 자기책임의 원칙 즉, 책임주의의 원리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책임주의란 어떠한 위법행위가 있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때에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책임의 한계원리를 의미한다.

우리 헌법이 직접적으로 책임주의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며 연좌제의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13조 제3항은 책임주의 원칙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책임주의는 우리 법률체계 전편에 흐르고 있다.

2.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

A라는 업체의 직원이 실적 유지, 승진 등 본인의 이해를 위하여 입찰서류를 위조·변조한 경우 또는 관계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경우, 만약 회사가 이에 대해 지시를 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 그러한 경우에도 회사를 상대로 부정당업자 제재를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국가계약법상의 부정당업자 제재만이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행정법규는 임직원이 위법행위를 한 경우 고용주인 회사에게도 처벌을 부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회사의 독자적인 책임 유무를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신 디케가 손에 쥔 저울의 의미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양벌규정’의 사고에서 기초한 것이므로 그 의미와 양벌규정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양벌규정(兩罰規定)이란 어느 기업의 직원이 업무에 관하여 위법행위를 하였을 경우 직접 행위를 한 직원을 처벌하는 외에 고용주인 기업을 함께 처벌하도록 하는 형벌규정을 말한다.2008년 말까지 양벌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행정법규는 총 392개에 달하였다.

그러던 2009년 헌법재판소는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32조, 구「건설산업기본법 」 제98조 제2항, 「청소년보호법 」 제54조,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 제31조, 「의료법」 제91조 제1항, 구「도로법」 제86조 등 6개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으며, 그 요지는, “양벌규정들은 종업원 등의 일정한 범죄행위가 있으면 법인이 그와 같은 종업원 등의 범죄에 대해 어떠한 잘못이 있는지를 전혀 묻지 않고 곧바로 영업주인 법인에게 종업원 등과 같이 벌금형을 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처럼 종업원 등의 범죄행위에 관하여 비난할 근거가 되는 법인의 의사결정, 즉 종업원 등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대한 법인의 독자적인 책임에 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법인이 고용한 종업원 등이 업무에 관하여 범죄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과하고 있다면, 이는 비난 받을 만한 행위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범죄행위를 이유로 처벌하는 것으로서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부정당업자제재에 반영된 책임주의

3. 부정당업자제재에 반영된 책임주의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결정의 영향으로, 양벌규정을 둔 행정조항들의 단서에는 “법인 또는 개인 영업주가 종업원 등의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관리·감독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영업주의 형사책임을 배제”하는 면책조항 반영이 속속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처분인 부정당업자제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어 2010. 7. 21.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위와 같은 면책조항을 명문화한다. 즉 (현행)시행령 제76조 제2항 단서에 ‘부정당제재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이 사용인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로서 계약상대자 등이 그 사용인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여, 기업이 직원의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정을 입증한다면 부정당업자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결국, A사의 직원이 어떠한 위반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회사의 지시 또는 관여와는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위반행위를 한 것이라면, A사는 평소 임직원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입증하여 제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4. 맺으며

면책규정이 신설된 이후에도 해당 조항을 직접 적용하여 계약업체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데에는 아직 많은 난관이 있어 보인다. 법원은 면책조항의 적용이 문제되었던 사안에서 법원은 계약업체 직원이 공사현장 소장에게 200만원을 제공한 사안에 대해 발주기관이 계약업체에 대해 부과한 부정당제재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직접 면책조항을 적용했다기 보다는 뇌물 제공 경위와 공사이행에 문제가 없다는 사정 등을 고려할 경우 제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하였다. 관리감독의무를 다하였다는 점 또는 그 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소명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사전적인 준비가 없는 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017. 4. 서울고등법원이 처음 면책조항을 적용하여 부정당제재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고, 제안서 평가위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형사사건에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법인에 대하여 해당 발주기관이었던 산업통상자원부가 법인의 감독의무 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불문에 붙인 바 있다. 이러한 제재불문 결정에 대해 기획재정부도 같은 취지의 회신을 하였다. 발주기관의 점진적인 변화와 유권해석을 통해 면책 조항이 차츰 현실화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