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꿈보다 소중한 지금 그대로의 당신께’

< 꿈길이 아니더라도 꽃길이 될 수 있고 >

글. 양원희

  • 지금 모두 꿈꿨던 자리에 계신가요?
  •  한때 하늘을 나는 꿈을 품고, 멋진 유니폼을 입으며 세계를 누비는 꿈을 꿨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땅에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바쁜 세 아들 엄마가 되었고, 정신없이 장바구니 없이 장 보러 갔다가 봉투 값 20원이 아까워 품 안에 이것저것 안고 오는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자기 연민에 빠질 법도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감정조차 사치입니다. 정신없이 살고는 있지만 무언가 뒤쳐지는 기분이 들고, 열심히 살고는 있는 것 같은데 잘 하고 있는 건 맞는지 불안한 ‘현재의 나’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 있어 집어 들었습니다.
  • 꿈길이 아니더라도 꽃길이 될 수 있고
  •  작가 조은아는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작가로서, 투병중인 엄마와 함께 보냈던 두렵고 아프던 날들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마냥 슬프고 아픈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라, 가슴 졸였던 길 안에서 깨달은 삶의 아름다움과 빛나던 순간들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방송인을 꿈꾸며 언론영상학 전공을 선택했던 그녀는, 마침내 방송작가의 꿈을 이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 그 꿈을 접습니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엄마가 생사의 고비를 겪으실 줄 몰랐고,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주얼리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녀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꿈꾸던 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꿈꾸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기만 할까.
    꿈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불행할까.

     꿈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나’는, 꿈이 아닌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지금 행복합니다. 물론 순간순간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지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반문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행복합니다. 내가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늘 나를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꿈과는 거리가 먼 일터에서도 느끼는 보람과 벅차오르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행복은 꿈꾸던 삶이 아닌 곳에서도 자연스레 곁을 내어준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낍니다.
  • 행복의 재정의
  •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작가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자꾸 물어 보는 것 같았습니다. 꿈도 포기하고 엄마를 간호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지만, 그 속에서도 뭉근한 행복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떠올릴 때,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픈 사람들은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실제로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여다보니, 병명을 알게 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냐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도 식이요법 때문에 좋아하던 커피를 한 모금 겨우 할 수 있었지만, 커피 한 잔을 다 못 마셔서 슬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모금이라도 맛볼 수 있게 살게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몸이 노곤해질 때마다 가질 수 있는 한 잔의 커피 타임이 얼마나 감사한지!

    애써 피우지도 말고,
    급하게 지지도 말고,
    비바람에 쓰러지지도 말고...

     내가 걷는 이 길이 꿈길은 아니지만 진짜 꽃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어쩌면 구름 위를 걷는 꿈길보다는, 바스락 바스락 생동감 있고, 때로는 흙도 밟으면서, 때로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내음과 바람이 기분 좋은 꽃길이 진짜 인생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꽃이 아니라, 피우고 지는데 연연해하지 않고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면서 꾸준하게 우리의 걸음걸음을 지켜주는 들꽃 가득한 길.

    2021년도 벌써 반을 살아낸 당신의 길에 한아름 꽃잎을 깔아드립니다. 꿈길이 아닐지라도 꽃길을 걷고 있는 당신의 뒷모습에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