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규제에 대한 집행정지제도의 활용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1.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199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기자로 일했던 리샤 게일은 무려 43차례나 흉기로 찔려 숨진 상태로 자신의 집에서 발견된다. 주 경찰은 인근에서 전과자인 윌리엄스를 용의자로 지목하였고, 수사 과정에서 윌리엄스의 여자친구와 윌리엄스와 수감생활을 같이 한 헨리 콜로부터 그가 여기자를 살해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윌리엄스의 계속된 무죄주장에도 강도살인죄로 기소하였고 법원은 사형을 선고한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윌리엄스의 사형집행은 2017년 8월 22일 오후 6시로 결정되었고, 당일 주 교정당국은 사형집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형 집행을 불과 4시간 앞두고 에릭 그레이튼스 주지사는 윌리엄스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정지할 것을 명령한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서 채취한 DNA 분석결과 윌리엄스의 지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지문이 극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레이튼스 주지사는 "사형은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처벌이므로 사형을 집행하려면 유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였고, 윌리엄스에 대한 사형 집행의 중단을 요구하였던 인권단체들은 "적절한 결정"이라고 환호하였다. 이후 주 경찰은 진범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윌리엄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던 여자친구와 헨리 콜이 보상금을 노리고 허위 진술을 하였는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다.

사형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사실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시각은 너무나 첨예하게 대립된다. 이는 개인만이 아닌 국가간의 제도 운용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유엔 차원에서도 사형집행의 유예 더 나아가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한 논의와 결의가 있었다. 2007년 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EU가 제안한 ‘사형집행 유예(모라토리엄) 결의안’의 채택 여부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였고 유엔 회원국 중 찬성 99, 반대 52, 기권 33으로 결의안이 채택된다. 결의안에는 첫째 사형집행의 유예 단계에서 폐지의 단계로 이어지기를 촉구하며, 둘째 사형집행의 기준을 명확히 준수하고, 셋째 사형집행 유예 실행결과와 진전상황을 유엔 총회에 매년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비록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국가에게 도덕적, 윤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처럼 국내의 실태가 국제사회에 공개되기를 꺼리는 나라들은 사형집행 현황을 유엔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던 우리나라는 기권하였고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사형집행 유예 결의안에 반대하였다. 2017년 8월 윌리엄스에 대한 사형 집행 강행은 위와 같은 미국의 입장 하에 있었다.

행정처분의 집행정지

2. 행정처분의 집행정지

형사처벌의 집행유예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점유이전금지, 절차진행중지 등과 같은 민사 가처분이 있고, 행정처분의 경우에도 법원의 판결을 통해 처분의 적법 여부가 판가름 될 때까지 처분의 집행 또는 효력을 정지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집행정지 제도가 인정되는 이유는, 만약 처분의 집행을 당장 정지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소송에서 처분이 위법하다는 승소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미 불이익을 받은 상황이라면, 굳이 재판을 청구한 실익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법원도 집행정지의 목적이 신청인이 소송에서 종국 판결을 받을 때까지 그 지위를 보호함과 동시에 후에 받을 승소판결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2. 6. 8. 자 92두14결정 등). 따라서 집행정지 결정은 법률적으로 행정처분이 없었던 상태로 복귀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집행정지 결정에 위배하여 이후 이루어지는 입찰참가제한, 거래정지, 계약체결거부 등의 조치들은 그 하자가 중대하여 무효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은 입찰참가자격제한, 직접생산확인취소와 같이 해당 처분으로 발생하는 직접적인 효과 외에도 낙찰자 결정시 감점, 계약해지, 인증정지 등 해당 처분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는 부수적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도 미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법리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공조달 실무현장에서는 처분이 이미 진행되다가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경우와 처분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경우를 달리 취급해야 하지 않느냐는 인식 하에 낙찰자 선정에 불이익을 주거나 계약체결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국가계약제도를 수립하고 관련 법령 해석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가, 법원에 의해 처분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경우에는 당해 업체에 대한 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것이므로 입찰참가 및 계약체결 등을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취함으로써 실무현장에서의 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집행정지 결정을 받고자 한다면 신속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집행정지를 받기 전 일시 처분이 집행되고 있던 사이에 이루어진 불이익 조치이다. 조달청과 같이 처분 부과 결정 후 7일 내지 10 일 정도에 처분의 효력이 개시되도록 정하는 경우 자칫 시기를 놓치면 그 기간 내에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내기가 쉽지 않아 종국적으로 집행정지 결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은 처분이 진행된 경우가 다수이다. 담당 공무원이 집행정지 신청사실을 감안하여 부수 조치들을 잠시 유예해주면 별 문제가 없으나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당해 처분 사실을 전제로 감점,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에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정부기관 A는 직접생산확인취소처분 권한을 행사하는 B기관으로부터 업체 C에게 해당 처분을 부과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관련 법에는 직접생산확인 취소처분을 할 경우 C와 관련된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A는 관련 계약을 해지하였고 C는 그로부터 이틀 후 법원으로부터 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는다. 처분이 진행 중이던 당시 A가 행한 계약해지 자체는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법원이 계약해지의 근거가 된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였고, 집행정지제도가 마련된 취지를 고려한다면, 해지 철회 등 C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고민해 볼 수도 있었지만, A의 담당자는 그렇게 해야 할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통한 구제를 요청하였고 결국 법원은 계약의 유지를 구하는 가처분 절차에서 C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규정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신속한 집행정지 신청이 아쉬운 사안이다.

거래정지 등을 비롯하여 법원 판결을 통해 새롭게 행정처분성을 인정받는 행정행위의 유형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후 리스크가 최소화되는 시점을 골라 소송을 취하하는 사례들을 거론하며 집행정지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잘못된 처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고 이를 다투는 실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집행정지 신청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호장치는 보호장치대로 의미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