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당신의 노후

< 저자 박형서   |   출판 현대문학>

글. 양원희

  •  제목이 살벌하다.
    살벌한 단어는 단 하나도 없는데,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아슬아슬한 이 느낌은 뭘까?
  •  이 소설은 국민연금공단의 노령연금 TF(Task Force) 팀 팀장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장길도의 이야기이다. 누구보다 사명감과 충성심으로 자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장길도는 퇴직 후 조직과 맞서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9살 연상의 아내가 오래전부터 노령연금을 부어왔고, 연금의 수급자였던 것이다. 노령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연금이 고갈될 처지에 놓인 연금공단은 조직적으로 연금 수급자들은 은밀하게 제거해왔고, 그의 아내도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아내의 죽음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길도의 이야기.
  •  모든 게 다 현실이고, 모든 게 다 소설이다
    모든 게 다 무정하고, 모든 게 다 유정하다
  •  책 말미의 <작품 해설> 중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이영광 교수의 말처럼, 소설이었지만 곡 도래할 현실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 이 시대는 각종 ‘혐오’로 서로를 미워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중에서 ‘노인 혐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  한국은 끝났다
  •  일본의 경제지 ‘머니 1’은 이러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계속 내리막이고 2050년 GDP는 15위 이하로 추락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고령화의 심화가 생산연령인구의 급감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명이고, 우리 아이들은 곧 다가올 미래에 혼자 노인 4명을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노인’이 예전에는 지혜롭고 연륜 있는, 그리고 공경 받는 어르신이었다면, 지금은 첨단 기술에 느리고 어디서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귀찮은 인간 부류로 취급당한지 꽤 됐다. 나만 해도 20대 젊은 시절, 지하철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가방을 던질 듯이 놓는 할머니들을 참 싫어했다. 30대 아기 엄마 시절에는, 아들이냐 딸이냐, 딸 한 명 없어서 어떡하냐, 딸을 하나 더 낳으라고 훈수 두는 할머니들을 오지랖 떤다고 싫어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니, 체력은 진짜 예전 같지가 않고, MZ 세대들의 하는 행태를 보면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천년만년 싱그럽고 젊을 것 같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빠르게 늙을 것이다. 지금의 ‘노인’은 그저 귀찮은 대상일 수 있지만, 진짜 다가올 미래에는 제거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시무시하지만. 그리고 나도 그 제거 대상 중 한 명이 되겠지. 그렇다면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걸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점점 서글픈 생각이 든다.
  •  <당신의 노후>와 비슷한 결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나무> 중 ‘황혼의 반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에서 노인 부양에 견디다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인은 일도 안 하면서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다. 정치인과 학자들도 노인들 때문에 국가 재정적자가 증가한다고 비난한다. 식당에는 <70세 이상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걸리고, 80세 이상에게는 약과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며, 100세 이후에는 모든 의료 서비스를 금지시킨다. 그리고 자식들이 부모를 버리는 순간 체포조가 그 노인들을 붙잡아 안락사 시킨다. 너무 무서운 이야기지만, 이를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소름 끼친다. 세계 여러 나라 곳곳에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과 여러 가지 의견들이 논의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부모를 부양하면 아파트를 싸게 해주기도 하고, 일본은 간병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을 대비해, <차세대 헬스케어 시스템 구축>을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첨단 복지분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에 대한 개인의 인식 변화가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노인들의 지혜를 새로운 지식과 생산적인 일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부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고 윈-윈 하는 존재라는 인식의 변화와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옛날의 여성은 무가치하고 무기력했지만, 지금의 여성은 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노인도 그렇게 될 수 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에 나오는 노인들의 투쟁문은 이렇다.
  •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노인들은 아기들을 돌볼 수 있고
    뜨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모든 일을
    우리는 아직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제거하기보다 활용할 생각을 하십시오.
  •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콕 박힌다.
  •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