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저자 후안 안톤 숄츠   |   출판 문학수첩>

글. 양원희

  •  행복.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목적은 행복인지 모르겠다.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미래도 준비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먹고 마시고, 행복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한가?
    이 질문에 주저 없이 Yes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좀 망설이게 된다. 물론 행복한 순간, 순간들이 있지만, ‘불안장애’ 때문인지 행복한 순간을 오로지 느끼지를 못한다. 혹시 이 행복 뒤에 찾아올 고단할 삶의 순간순간들이 두렵다.
  •  저자 안톤 슐츠는 독일 출신으로 방송 프로듀서, 비즈니스 컨설턴트, 교수, 다큐멘터리 제작자 등 다양한 직업인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경험했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살며 나름 행복한 삶을 발견한 그는,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에 왜 이리도 많은지 궁금했다. 한국은 OECD 국가들의 연간 행복지수 순위에서 거의 최하위고 자살률은 늘 상위다. 한 세대만의 의지와 노동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엄청난 성공신화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왜 유달리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일까? 그래서 그는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에 대해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용기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  한국 사회에는 규제가 많다. 그리고 길이 좁다.
  •  ‘응애~’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준비 땅! 하고 출발선에서 스타트 하는 육상 선수처럼 모두 거의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미친 듯이 달려간다. 바로 대학이다. 이 목표를 끝내고 나면 모두가 취직을 향해 또 달린다. 더 더 더 더 빨리, 더 더 더 더 많이, 더 더 더 더 좋은 것으로. 그렇지만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이 개인의 생각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달려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것은 꿈꿔야 하고, 저것은 아예 생각도 해선 안 된다는 무수히 많은 엄격한 규칙과 고정관념 속에서 개인의 행복이 설계되어진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기보다는 행복이 뭔지 잘 모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외국인 연습생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K-POP 아이돌들. 그야말로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비주얼에, 눈길을 사로잡는 노래와 춤 실력에, 심지어 요즘 아이돌들은 여러 나라의 언어까지 능숙하다.
    내가 일했던 회사에서도 한국인 연습생들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을 배웠다. 진짜 완벽 그 자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스케줄이 빽빽하다. 보컬 수업, 댄스 수업, 악기 수업, 언어 수업 등 수업도 다양하다. 그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예절 수업이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구설수를 낳기도 하고, 거액의 광고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연예계에서는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수업인지 모르겠다.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연습생들 인사성은 정말 끝내줬다. 또한 작은 호의에도 ‘감사합니다’를 황송할 정도로 여러 번 얘기하고, 작은 실수를 하면 ‘죄송합니다’를 안타까울 정도로 무한 반복했다. 한번은 한 연습생이 예의에 벗어난 아주 사소한 실수를 했는데, 팔굽혀 펴기 50개가 벌로 주어졌다.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가진 아이돌 스타들이 자살하는 뉴스를 우리는 가끔 접한다. 전 세계가 동경하는 K-POP 스타인데, 왜 불행한 죽음을 선택했을까? 목표를 향해 규제하고 컨트롤하고 훈련하지만, 오히려 그 규제가 방향을 잃게 하는 것 같다. 늘 목표 뒤엔 다음 목표가 있고, 또 다음 목표가 있다. 끝이 없다. 그렇기에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가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그 순간에 충실하여 만끽하며 살 수는 없을까?
  •  한국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  서울에서도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으면 더 바랄 나위 없다. 한국에서의 집은 HOME이라기보다는 HOUSE다. 집에 대한 왜곡된 집착은 ‘하우스 푸어’, ‘영끌’이라는 그야말로 웃픈 단어를 만들어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아파트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서울의 집값은 언젠가 떨어질 거라 그는 말한다.
    그리고 항상 ‘한국’하면 나오는 이슈 사교육. 독일에선 일주일이면 가능했는데, 한국에서 6개월이 지나도 수영을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저자가 물어보는데 뜨끔했다. 내가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낼 무렵, 어린이 수영장이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풀 높이가 어린이의 키에 최적화 되어 있고, 물의 온도는 적당히 미지근하다. 심지어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아이들 각자의 머리까지 말려 주신다. 그리고 셔틀버스로 모셔가고 모셔온다. 비쌌지만 나도 거길 보냈다. 심지어 세 아이 모두. 그리고 영법 네 가지를 배우는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진짜 생각해 보니 자유형 하나는 하루 만에도 배우는 게 가능할 것 같다. 저자는 학원 입장에서는 수강생이 일주일 다니는 것보다 6개월 다니는 편이 이익일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은 실제 교육보다 가르치는 척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생각해 볼 일이다.
  •  한국에는 ‘한’이 있다.
  •  ‘한’은 원망스럽고 억울한 마음속 슬픔이 응어리진 것을 말한다. 세월을 두고 쌓인 밀도 높은 슬픔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슬픔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굴곡진 역사이다.
  •  하지만 한을 아름다움, 숭고함으로 연결하는 인식의 흐름을 거둬내면 어떤가?
  •  나는 저자의 이 질문이 굉장히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역사적 시련은 한국 사람만 겪은 것이 아니다. 살면서 아픔 없는 사람 없고, 전쟁이나 수탈의 역사가 한국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 사람만 고생하며 살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의 특별한 ‘한’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는 자기 연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연민은 자기가 피해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기 연민 속에 감사와 만족은 없다. 그는 스스로 한의 민족임을 역설하는 한국 사람을 보면 그런 감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피해자라고 정의하고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성장하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나는 피해자이기만 한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진짜 대한민국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진심으로 편안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상한 행복에 대해, 쉼표를 찍고 다시 한번 이 책을 계기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