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무엇이 옳은가

< 저자 후안 엔리케스   |   출판 세계사>

글. 양원희

  •  당신 주변에는 당신이 이러저러한 일들을 잘못하고 있다며 절대적 확신을 갖고서 지적하는 이가 너무도 많다. 나만 해도 정치적 견해의 차이 때문에 친한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고, 그 친구는 나를 우매한 대중으로 폄하하며 나를 가르치고 나의 의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달려들었다. 난 내 정치적 견해뿐만 아니라 내 모든 의견에 대해서 백 프로 확신한다고 자신 있게 말을 못 하겠다. 그런 와중에 그 친구의 절대 확신은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불편했다. 무조건 나와 의견이 달라서 불편했다고 하기엔 좀 부족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유를 알았다.
  • 좌파에서든 우파에서든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대개 두려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저들’보다 ‘나음’으로써
    자기 지위를 확보하려는 경우가 우리에겐 너무 흔하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우려면 우선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  이 책의 저자인 후안 엔리케스의 말이다.
     후안 엔리케스는 지금 가장 도발적인 이슈를 던지는 미래학자이자 생명과학 분야의 권위자다. 무엇이 옳으냐는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던져준다. 일명 X 세대라고 불리며, 나의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통 넓은 바지로 온 동네를 쓸고 다녔던 나도, 이제는 MZ 세대인 아들들에게 ‘꼰대’같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예전에 옳았던 게 지금은 아니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가치들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윤리적인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뀐다. 산업혁명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약 천 년간 다문화적으로 수행된 노예제도를 폐지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으로 지구의 절반이 인터넷망으로 연결되었고, 이 연결망으로 소통하고 비교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기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바뀐 기술에 발맞추어 윤리적 기준 또한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고 있다.
  •  나는 요즘처럼 피곤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치적, 지역적으로, 어떤 이슈로, 예를 들어 ‘동성애’같은 이슈에 대해서 반으로 나누어 싸우는 게 굉장히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되었다. 더 무서운 건 싸우는 양측이 모두 무섭도록 단단한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훨씬 더 과격하고, 사악하며, 인종차별적이고, 착각에 빠져 사는데다가 화도 많이 나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다. 뇌과학자 정재승이 추천 글에서 언급했듯, 책장을 시원하게 덮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친구들과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논쟁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책이다.
  •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은 옳은가.
    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옳은가.
    당신의 ‘옳음’은 모두 틀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옳은가.
     확답은 못 얻었지만, 나는 작가의 글에서 희망을 보았다.
  • 우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부터 브렉시트까지, 총기 소지와 채식주의, 종교의 대립, 군사적 개입, 대학 입시 등 수많은 윤리적 쟁점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볼 때든 미래를 예측할 때든, 현대 윤리는 오늘날의 격정적인 토론과 무모한 절대적 확신에 대해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어 하나를 요구한다.
  • 바로 ‘겸손’이다.
  •  나는 아울러 여기에 ‘자기 부인’을 덧붙이고 싶다. 코로나에 걸려서 방에서 일주일간 갇혀 지낼 때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중시하는 가치들과 가족,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질병은 우리에게 많은 후유증을 남기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히 보여준다. 팬데믹은 세계의 재설계와 재건설을 가져왔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인 찰스 아이젠슈타인은 이렇게 썼다.
  • 한동안 들이닥쳤던 위기가 가라앉고 나면 사람들은 과거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위기의 시기에 접한 어떤 것을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이것마저 나중엔 옳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자기 확실성’을 좀 내려놓고, 내 의견을 크게 외치기 전에 숨을 한번 고르고, 겸손과 자기 부인의 생각을 먼저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모두가 원한다’는 이 명제는 변하지 않을 옳은 명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