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유일한, 평범

< 저자 최현정   |   출판 21세기북스 >

글. 양원희

최현정 아나운서.
내가 참 좋아하는 아나운서였다.

무엇보다 기상캐스터로 입사해서 다시 공채 아나운서로 일한다는 점에서 ‘언론 영상학’을 전공한 내가 주변 선후배, 동기들이 언론 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많이 지켜봤기에, 그 선택이 얼마나 용기 있고 힘든 과정인지를 알기에 더 좋아했다. 특히 예전에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내한했을 때, 그가 고교 졸업 파티에서 누구와 춤을 췄다는 아주 사소한 자료까지 확보한 최현정 아나운서에 감복해, 톰 크루즈가 최 아나운서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소리 없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쓴 책이라기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깊이가 있지만 쉽고, 그야말로 유일하지만 평범한 그녀의 이야기와 담백한 문장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 빠르게 잊힌, 전직 아나운서
    느리게 나아가는, 현직 상담사 수련생
    30여 년을 꿈만 꾸다 늙어버린, 작가 지망생
    여러 미완성을 모아 새로운 모자이크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표지에 소개된 그녀의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되는 세 번째 줄. 30여 년을 꿈만 꾸다 늙어버린, 작가 지망생. 내 이야기 같았다. 수필가인 엄마 덕에 어려서부터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싶었다. 김은숙 작가처럼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노트북에 저장한 시놉시스도 몇 개 있다. 꿈만 꾸고 아직은 실천하지 못한 묻어둔 꿈. 묻어둔 꿈에 대한 마음과 자세를 알기에 더 공감이 되었다. 쓰려면 잘 써야 했고, 잘 쓰려니, 잘 안됐다는 그 말이 나는 뭔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글을 쓰자고 결심한 작가의 선택이 너무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내가 쓴 문장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이 있으니!
  •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녀’
  •  일명 ‘경단녀’라고 불렸던 나도 참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잘 나갔던 아나운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사람 사는 게 다르지 않구나’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상담사’로 인생 2막을 여는 작가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었다. 10년 넘게 애를 낳고 키우고를 반복하며 세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할 일을 찾았는데,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공도 무의미했고 예전 경력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머리와 마음이 모두 굳었다. 그래서 인형 눈 박기처럼 단순하고 무한 반복되는 일을 처음 시작했다. 바로 학습지 채점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학습지라, 30% 교육비가 감면이 된다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장당 10원을 받는 채점 아르바이트였는데, 그때 나는 돈과 노동의 가치를 알았던 것 같다.
     치킨을 먹어도 인당 한 마리씩 먹는 아들들 덕에, ‘꿈’보다 ‘돈’이 목표가 되었다. 너무 속물같이 돈을 목표로 시작했어도 치열하게 살다보니 꿈과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노동만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지냈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올 때마다 놓치지 않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열심히만 할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덕분에 나는 ‘N잡러’가 되었다. 서평을 기고하고 조달우수기업을 취재하는 프리랜서 기자가 되었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외국인 연습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교육청의 학습상담사로 다문화 아이들의 한글을 가르치고, 이제는 엄마들 사이에서 꽤 입소문 난 한글강사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경단녀’가 아니다. 상담사 수련생인 작가 또한 더 이상 ‘경단녀’가 아니다.
  • 힘듦 경쟁
  •  담백한 문장 속에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의 힘듦을 저울질하지 말자. 아... 내가 얼마나 힘듦을 저울질하는 사람이었나... 동네에 아이가 하나이고 은행에 다니는 남편의 수입으로 가계를 꾸려나가는, 전업주부로 사는 엄마가 한 분 계신다. 심지어 시댁도 미국에 있어서, 명절이 되면 늘 단출한 가족 구성원 셋이서 여기저기 식도락 여행을 다닌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니, 아이 한 명 학원 보내면 시간이 남아돌아 커피숍에서 책을 읽거나 골프연습장 가서 운동을 한다. 내가 그분을 만날 때마다 “00엄마는 뭔 팔자를 타고난 거예요? 진짜 세상 편하겠다!” 얘기하며, 나는 아이 셋에, 힘은 힘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많이 들어가고, 일까지 하느라 늘 몸과 정신이 탈탈 털리는데 ‘저 엄마는 얼마나 편할까‘ 하며 자기연민에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누군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보다 힘드냐’로 대꾸하거나 ‘너보다 힘든 사람이 세상에 넘친다’고 참 각박하게 말했던 것 같다. 각자 사람에게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는데, 내가 마음대로 저울질하고 판단했었다. 정말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출산과 육아
  •  시인 신달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결혼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고. 특히 결혼 생활 중 육아는 진짜 사람의 한계치를 보는 ‘겸손한 과정’ 그 자체다. 내려놓는 것의 연속이다. 특히 힘들게 아이를 가진 작가의 진솔한 육아 이야기는 절절하고 와닿았다. 그리고 시기마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경이롭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마음까지 온전히 아이 곁에 있기 위해서는, 아이 곁을 떠나 있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 뭔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엄마표로 이것저것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수상과 우수한 성적이라는 좋은 결과를 내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거나 괜히 샘이 났는데, 아이의 성취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자녀가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 그것이 나의 공인 양 우쭐해지고 싶지는 않다. 네가 잘했고, 그러니 네가 기쁠 테고, 너의 기쁨을 바라보는 나도 기쁘다. 그러므로 엄마는 너의 성취를 기꺼이 축하하기 위해 엄마의 성취도 빠뜨리지 않고 챙기겠다는 그 말. 너의 결실에 매달리느라 엄마 것을 소홀히 해서 정작 엄마는 뭔가 이루지 못해서 괜히 내 것이 아닌 너희의 것에 연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나를 다시 한번 다잡아 주었다.
  • 상담사, 인생의 2막
  •  상담사 수련생으로 일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시선을 끌었다.
     모든 감정은 옳다. 감정이란 우리의 통제력을 넘어선다. 노력으로 반드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우선, 받아들여져야 한다. 모든 감정은 옳고 그름 없이 그저 귀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애써 멀리하고,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며, 아이들에게도 그런 감정들을 이겨내라고 가르치는 나 자신을 멈춰 생각해 보게 했다. 특히 아들만 셋인 나는 딸도 아니고 아들이 질질 짜는 것이 참 못마땅했는데, 울음은 좋은 것이라고, 정서 관리에 좋다고, 울음이 가진 해소의 힘, 정화의 힘, 위안의 힘은 엄청나다고 작가가 이야기해준다. ‘선한 영향력’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 또한 나의 시선을 또 한 번 바꾸어 주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얼핏 보면 타인을 위한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을 향한 강렬한 욕구다. 남을 돕는 것을 통해 내가 ‘훌륭한 사람’의 위치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로 바라보았다. 평소에 내가 자주 듣는 목사님 설교와 일맥상통했다. 착한 게 죄다. 착한 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착한 나’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나의 욕심이다.

     진짜 시간이 빠르다. 2023년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이 바뀌고 4월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쉼표를 찍고 나에 대해서, 남에 대해서, 주변에 대해서 생각하고 통찰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하지만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나와 당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