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

김·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공공조달과 ESG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에 사는 조각가였다. 키프로스의 여인들은 섬에 온 나그네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몹쓸 짓을 한 탓에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게 되었고 여인들은 그 저주로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매춘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피그말리온은 섬의 여인들을 혐오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인을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피그말리온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듯 조각상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목걸이로 치장해 주기도 했으며 살아있는 사람처럼 침대에 눕히고 베개를 받쳐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프로디테의 축제일이 다가 왔고 피그말리온은 여신에게 선물을 바치면서 조각상의 여인이 실제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기도에 감동하여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집으로 돌아 온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는 순간 여인의 입술에는 온기가 느껴졌고, 차갑고 딱딱한 피부는 혈색이 도는 살결로 변하였다.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안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진짜 여인으로 변한 자신의 연인에게 갈리테리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심리학 또는 경영학에서 언급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위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경영주가 어떤 직원에게 업무성과가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이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면 직원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실제로 업무성과가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역시 범고래와 조련사의 이야기를 통해 피그말리온 효과를 말하고 있다.

일본의 불황기가 시작된 1973년 시골의 허름한 창고에서 단 네 명의 직원으로 시작된 ‘일본전산’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작은 회사는 창립 이후 수십 배의 성장을 했으며, 2008년 리먼 쇼크로 대부분의 전자기업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에도 영업이익 50% 성장으로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회사로 유명하다. 설립자인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직업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세계 석학들이 참석하는 세계경영자대회에 두 번이나 연사로 초청되기도 하였다. 일본전산의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입사시험에 있다. 사장 자신이 뛰어난 학벌을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고학력은 입사조건이 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입사시험은 큰소리로 말하기,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청소, 오래 달리기로 진행되었다. 어찌 보면 황당하고 무슨 저런 기준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일본전산은 지원자의 열정, 투지와 인내를 판단하였다. 일본전산의 인사 방식에 있어 또 다른 특별함은 가점주의의 채택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직원의 실수에 대해 점수를 깎고 이것을 인사에 반영하는 감점주의에 치중한 반면 일본전산은 가점주의를 통해 직원의 피그말리온 효과를 실현하였다. 감점주의를 취할 경우 직원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만을 익히려 할 것이고 도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것이 일본전산의 생각이었다.

칭찬과 가점이 참여자의 유대를 증진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합하는 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가점보다는 감점이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참여자를 배제하는 쉬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특히나 국민의 예산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공공의 수요를 충족하는 공공계약의 경우 감점제도는 기준에 미달하거나 법규를 위반한 자를 걸러내는 불가피한 장치로 포장되기도 한다. 다만 지체상금, 부정당업자 제재 등 그 자체로 규제에 해당하는 사유를 이유로 다시 장기간에 걸쳐 감점을 부과하는 것은 실질적인 이중제재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다른 입찰참여 제한이다. 이른바 규제 이력 감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21년 4월 부정당제재를 받은 자에 대하여 다시 2년 동안 적격심사 신인도 감점 등 별도의 추가 감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발주기관의 내부규정들은 사실상의 이중처벌이며 과잉제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폐지를 권고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달청, 방위사업청 및 행정안전부 등은 자체규정 또는 계약예규에 산재해 있던 부정당제재 이력 감점제도를 순차적으로 폐지한 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고충민원이라는 구제 제도를 통해 제도 개선을 호소한 한 업체의 노력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다수공급자계약과 같은 일부 계약에 있어서는 담합, 뇌물 등의 사유로 부정당제재를 받은 자에 대하여 불공정행위 감점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재 이력 감점은 이름만을 변경하여 여전히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공공계약 속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장터를 통해 공공계약에 참여하는 업체가 있었다. 정부기관의 품질점검 결과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일부 항목의 규격미달이 나왔고 재점검을 요청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은 채 거래정지 처분을 받았다. 거래정지 처분만이라면 감수하고자 했던 업체가 결국 소송을 선택하게 된 것은 위 사실을 이유로 2년간 부담하게 될 품질관리 항목의 감점 때문이었다. 소수점 이하의 점수로도 낙찰의 향방이 바뀌는 입찰 제도 하에서 2년간의 감점은 업체의 존립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불이익이다. 이미 거래정지라는 침익적 처분을 부과하고도 다시 감점을 부과하는 것은 정부 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하였던 이중처분과 다르지 않다.

감점을 뇌물과 같은 중대 범죄, 부정당업자 제재 등 행정처분의 부수적 효과 정도로 보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 자체의 불이익 정도가 지나치게 크다. 경쟁입찰에서의 감점은 그 자체로 낙찰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이 되며 더욱이 그 적용 기간이 2년 이상이라는 것은 해당 업체의 공공계약 참여를 사실상 제한하는 효과를 갖는다. 공공계약에 있어 규제보다는 격려를, 감점보다는 가점을 우선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상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연한 감점의 확대가 과연 계약의 적정한 이행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공공계약제도를 관장하는 정부부처, 발주기관 및 사법기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