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내용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인가


김태완 변호사  ||  김•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1. 영화 ‘관상’ 이야기

 공‘내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재 관상가이다. 처남, 아들과 산 속에 은둔하고 있던 그는 눈치로 관상을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에 넘어가 한양으로 향한다.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 주는 일을 하던 그는 관상으로 범인을 잡는 등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을 날리게 되고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게 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어떠한 위험이 되어 돌아올지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영화 “관상”의 이야기이다. 흔히 사주를 볼 때 묻는 것이 태어난 날과 시간이다. 이 안에 그 사람의 정해진 운명이 있으며, 사람은 그 정해진 운명에 따라 한 평생 길흉화복을 맞는다고 믿는다. 지나 온 과거에 아쉬움과 미련을 갖는 게 사람의 인지상정이지만, 알 수만 있다면 앞으로 다가 올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은 더욱 크다. 그래서 사주 말고도 관상이나 손금, 성명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미래를 짐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래를 본 다는 것 역시 완벽할 수는 없는 듯하다. 천재 관상쟁이 내경 역시 “바다를 보며 밀려오는 파도를 보았지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보지 못했으며” 자신이 세상에 나옴으로 인해 아들이 절명할 것이라는 비극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영화는 미래를 보았다고 해도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내경의 아들은 신분을 속여 과거에 응시하고,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을 하지만, 종국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운명은 어떠한 힘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처지를 말한다. 운명은 반드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사물과 관계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말한다.

2. 계약의 ‘운명’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방으로 하는 공공계약은 일반적으로 입찰공고, 낙찰자 결정, 계약체결 및 계약이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비약하여 입찰공고를 계약의 얼굴, 공고된 내용을 앞으로 펼쳐질 계약의 미래, 즉 계약의 운명이라고 한다면 입찰 공고된 내용을 변경하거나 새로이 추가하는 것이 과연 허용되는 것일까? 먼저 이미 체결된 계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합의가 있거나 변경 부분이 계약의 세부적인 사항에 그칠 경우에는 계약 내용의 변경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행기, 계약금액과 같은 중요 사항은 마치 사람의 운명처럼 그 변경이 자유롭지 않다. 만약 경쟁입찰을 통해 체결된 계약의 주요 내용을 사후적으로 자유로이 변경할 수 있다면 경쟁은 무의미 해지고 입찰은 특정인의 낙찰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수 있다. 다만, 계약 체결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 변화가 있는 경우 즉, 물가가 급격히 변동하거나 설계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계약금액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형평에 반하는 경우에는 법률과 계약조건의 규정에 따라 그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공공계약 역시 서로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사적 계약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보면서도 사람의 운명처럼 그 변경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직 계약체결에 이르지 않은 단계에서 입찰공고된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조금 더 자유롭지 않을까? 낙찰자로 선정된 자라 하더라도 그 지위는 발주관서에 대해 계약을 체결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데 그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형성할 수 있는 권리는 입찰공고를 내건 발주기관에게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사례의 검토

 발주관서 A는 그 소유 부동산에 대하여 ‘현 상태대로 매각한다’는 내용으로 입찰공고를 하였고 최고가로 입찰한 B가 낙찰자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A는 B로부터 낙찰대금 전액을 받은 다음 계약서를 작성할 시점에 이르러 매각대상 토지 중 지목이 도로인 1필지를 일반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낙찰자인 B는 입찰공고 내용과 다른 사항을 부당하게 추가한 것이라며 A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그러자 발주관서 A는 B가 낙찰된 후 10일 이내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사유를 들어 입찰을 취소하였다.
입찰취소의 무효를 주장하는 B의 청구에 대해 대법원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입찰절차에서 낙찰자의 결정으로는 아직 본 계약이 성립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계약의 목적물, 계약금액, 이행기 등 계약의 주요한 내용과 조건은 발주관서의 입찰공고와 입찰자의 입찰에 의하여 의사 합치가 되고 발주관서가 낙찰자를 결정한 때에 이미 확정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발주관서가 계약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계약의 주요한 내용 내지 조건을 입찰공고와 달리 변경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고 B에 대한 A의 입찰 취소는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법원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낙찰자 결정의 법적 성질을 일종의 계약의 예약으로 보고 있다. 이는 낙찰자 결정으로 곧바로 계약이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어도 낙찰자는 발주관서에 대하여 계약을 체결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고, 입찰공고된 계약의 주요 내용은 이미 발주관서와 낙찰자간에 일정한 구속력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4. 맺으며

 공공계약의 주요 분쟁사례 중 하나는 계약체결시점에 와서 발주관서 내부의 사정을 이유로 입찰공고와 달리 이행기 등 주요한 내용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주관서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고, 만약 이를 거절하였을 경우 발주관서는 입찰을 취소하거나 해당 낙찰자에게 계약 미체결을 이유로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부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위 법원의 판단에서 보듯이 정당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수양은 시대의 운명에 맡겨진 파도이고, 김종서는 미동하지 않는 바다이다. 이 둘은 외관상 대척점에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운명을 마주하는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공계약에서 발주관서와 낙찰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계약의 완성이라는 운명을 이어나가는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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