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타임 푸어 TIME POOR

< 타임 푸어   |   저자 브리짓 슐트   |   출판 더퀘스트 >

글. 양원희

  •  2022년.
     격동의 70년대 생인 나는, 어렸을 때 2022년은 우주인이 걸어 다니고 동그란 비행접시를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까마득한 미래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벌써 2022년이고, 심지어 2022년도 채 한 달이 안 남았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리고 시간은 늘 없다. 특히 아들 셋을 키우면서 집안일과 일까지 병행하니 시간도 없지만, 정신은 더 없다. 그런 가운데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라는 표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 얘기다.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
  •  <타임 푸어>의 저자인 브리짓 슐트는 <워싱턴 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는 늘 ‘타임 푸어’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고, ‘사람답게 사는 법’에 대해 다각도의 학술대회와 연구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한 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간 일지를 들여다보면 근거가 빈약하다. 말과 시간일지에 기록된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도 매주 30~40시간의 여유시간이 있다고 말해주면 사람들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런 성찰도 없이 내달리기 때문에 시간에 굶주린다고.
  • 가장 풍요롭고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일, 사랑, 놀이라는
    세 가지 영역의 균형을 달성한다.
  •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말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가 일, 사랑, 놀이의 균형을 맞추며 쫓기는 삶이 아닌 평온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일단 바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착각하고 죄책감을 갖는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자.
  •  구글이나 3M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20%는 빈둥거리면서 놀거나 무엇이든 흥미를 느끼는 프로젝트에 투입하라고 권유한다. 구글 직원들은 그렇게 빈둥거리는 시간에 G메일, 구글 뉴스, 구글 번역기와 같은 탁월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 매사에 까다로운 것으로부터 벗어나자.
  •  “당신의 부엌 바닥에서 심장 절개 수술을 할 일이 있습니까? 그릇이 얼마나 깨끗해야 합니까? 병균을 퍼뜨리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책 속의 다그침에 빵 터졌다. 청소와 오염 강박이 있는 나는 집이 깨끗해야 진정한 휴식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쓸고 닦고 하다가 쫓겨서 잠깐 쉬는 것만 휴식으로 누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좀 대충 해야겠다는 위안을 얻는다.
  • 영혼의 소리가 들릴 때 무조건 여가를 내라.
  •  글쎄...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시간에 쫓긴다는 것이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권 박탈의 결과라고 한다면, 진정한 여가는 자신에게 그 경험에 대한 일정한 통제권과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어려운 말 같지만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진리다. 이를테면 과도한 업무를 요구하는 상사한테, 일정 조율 없이 무조건적인 참여를 강요하는 시댁 또는 친정 행사에 NO를 외칠 수 있는 권리는 내 권리인 것이다.
  •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  미디어에는 온종일 아이 주위를 맴돌면서 철저하게 재능을 키워주거나 공부를 시키는 헬리콥터 엄마들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과잉 모성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나만해도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아기를 데리고 ‘오감놀이’, ‘음악교실’ 같은 문화센터 수업을 다녔었다.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가 더 커지고, 대학 입시가 가까워지면 모성은 그야말로 뜨거워진다. 부모가 온종일 매달려서 아이의 일정을 챙기고 학원으로 데려다주면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길러준다는 ‘집중 양육(Concerted cultivation)’이 미국의 백인 중산층 엄마들 사이에 유행이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미국 아줌마들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좋은 엄마의 조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가족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 하나하나를 더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그런 걱정 때문에 엄마 노릇 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고 메릴랜드 대학의 사회학자인 멜리사 밀키가 말했다. 과잉 모성을 떠받치는 기둥은 죄책감과 불안감이다. 사회 통념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유명한 보수주의자인 필리스 슐레플리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전국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엄마들에게 집에 머무르라고 명령하고, 일하는 엄마를 비난하고, 보육 시설을 가리켜 ‘낯선 사람의 손에 아이를 맡긴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녀조차도 대행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웠다.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엄마의 역할을 주변 사람과 좀 나누어서 하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기회를 주자.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덴마크’의 행복의 열쇠는 ‘휘게’이다.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 시간을 풍요롭게 쓴다는 것은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현대 사회의 시간 강박을 극복하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