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   저자 김현진   |   출판 프시케의숲 >

글. 양원희

‘죽음’과 ‘농담’이 한 문장 안에 있다. 묘하게 나를 끈다. 미친 듯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  나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항공사 승무원 준비를 할 때, 3년 내내 떨어지기만을 반복했다. 스터디 멤버들은 하나, 둘 취업해서 나가는데 나만 남겨졌다. 당시 처음 생긴 고속열차 승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저기는 되도 안 간다고 치기를 부렸는데, 스터디 멤버 중에 나만 서류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울 때, 운동화 한번 제대로 신을 시간이 없어서 늘 꺾어 신고 다녔다. 가슴에 지퍼가 있는 수유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온전한 나’는 없고 ‘엄마로서의 나’만 존재할 때가 있었다. 한 애가 자면 다른 한 애가 깨고, 다른 한 애가 잠들면 한 애가 깨서 결국 날밤을 꼴딱 세웠다.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아기 바운서를 발로 흔들면서 늘 서서 밥을 씹지도 않고 넘겼다. 그럴 때마다 우울이 내 삶에 끼어들었고, 삶이 너무 고단해서 죽고 싶다기보다는 살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  정말 엄청나게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모두에게는 절대치의 고통이 있다. 저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다 가진 사람 같은데 스스로 유명을 달리 한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은 가진 것 없이 불행해 보이는데 얼굴에 늘 기쁨이, 혹은 하다못해 담담함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다. 지금의 나는 살고 싶기야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불안장애와 강박장애를 친구 삼아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MBTI에서도 강한 내향형인 나는, 남을 웃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시답지 않은 농담도 자주 하고, 웃기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  저자 김현진은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지속된 부모로부터의 구타, 어린 시절 겪었던 혹독했던 가난, 일찍부터 저자를 괴롭혔던 우울증, 금전적 사기 사건과 녹즙 배달 아르바이트 등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여러 가지 고통을 지나, 수면제 때문이 아니라 수면제를 삼키느라 마신 물 때문에 배 터져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약을 삼켰다. 하지만 제대로 잘 죽지 못한 결과 삶을 다시 마주했고, 다행히 저자는 그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문장 구석구석에는 담담함과 위트와 냉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고 ‘자신을 아낀다’는 낯선 감각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도 보인다.
  •  삶이라는 것은 ‘죽음’과 ‘농담’이 한 문장 안에서 공존하는 것처럼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뒤에서는 당장이라도 삿대질을 하며 묻고 따질 것처럼 욕하다가도, 앞에서는 비굴하게 상사한테 굽신거리는 내 모습에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하루에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몇십 번씩 하며 급기야는 그 소리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은데,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는 강한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이런 내 자신이 싫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남에게서 확인받고 싶지는 또 않다. 저자의 말대로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약자가 된 사람들에게 함부로 굴기도 하고, 아무나 사랑하고 아무에게나 상처받는다. 너와 내가 너무 다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의 인간일 뿐이다. 이렇게 삶에 대해 관조해보고 나니 ‘인생’이란 게 정말 농담을 걸어오는 것 같다. 너무 자로 잰 것처럼 엄격할 필요도, 거창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할 필요도,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필연적으로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게 되고
    자기 인생은 가까이서 보게 되니
    남의 인생은 즐거워 보이고 나의 인생은 슬퍼 보이는 것이다.

    찬바람이 옷깃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까지 후벼 파려고 하는 이 가을,
    김현진 작가의 에세이를 친구 삼아
    내 인생에서 한 발을 빼고 남의 인생처럼 좀 멀리 보고
    나르시시즘도 자기 연민도 좀 내려놓으면 어떨까?
    시답지 않은 농담도 섞어가면서.

    그러고 보니 웃음의 대명사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도 했다.
    웃음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