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하게 불리한 특약의 무효

김·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금의야행

매혹의 도시 이탈리아 베니스에는 안토니오라는 선한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날 둘도 없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포샤라는 아가씨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모든 재산을 상선에 투자하여 돈이 없었던 안토니오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소문난 샤일록을 찾아가 필요한 금액을 빌려주면 항해 중인 상선이 돌아오는 즉시 갚겠다고 말한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 주지만 만약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베겠다는 조건을 단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로부터 받은 돈으로 포샤와의 결혼에 성공을 하지만 상선의 침몰로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게 된 안토니오는 1 파운드의 살이 베어질 죽음의 위기의 처하게 된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했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내용이다. 1596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우정과 사랑, 샤일록이라는 극단적 캐릭터와 반전으로 역사에 남는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가 가진 종교적, 인종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16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사회에는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유대인에 대한 조롱과 증오의 뿌리가 매우 깊었다. 당시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었다는 베니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의 문학 작품에서 유대인은 수전노인 동시에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의 역할을 주로 맡았고, 유대인 배척 감정이 고조되었던 시대적 상황은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셰익스피어가 다른 한편으로 유대인에 적대적인 베니스 사회에서 그들 역시 희생자라는 중립의 관점을 의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희극의 내용 중 샤일록은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 유대인은 손과 오장육부도, 사지의 감각도, 욕구와 감정도 없는지 아시오? 유대인도 당신네 기독교인들처럼 같은 상처를 입고 같은 병이 나며 당신들처럼 추위를 느낍니다. 유대인도 당신들이 찌르면 피가 납니다”. 안토니오의 살을 끝내 베겠다는 샤일록의 고집은 시대에 대한 유대인의 울분과 복수심의 다른 표현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돈을 갚지 않으면 살을 베겠다는 샤일록의 조건은 채무의 변제를 넘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불합리한 약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잔혹한 ‘부당특약’으로 남게 된다.

부당특약의 문제는 비단 희극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공공계약 실무에서도 법령의 규정과 다르거나 또는 법령에 근거를 가지지 않음에도 계약기간의 연장, 물가변동으로 인해 증가된 계약금액을 업체의 부담으로 삼거나 정산을 배제하고 지체상금의 기준금액 내지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하는 조건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업계의 비판과 긴 제도개선의 과정을 거쳐 부당특약이 금지되어 있음을 그리고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있음을 공공계약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이 알아야 할 부분이다.

과거 현장설명서에 명기되지 않은 사항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계약이행 중 발생한 민원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지고 처리한다는 특약으로 인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부담하던 관행들이 건설 하도급분야에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부당특약 설정을 제한하는 입법이 가시화 되었고 2013년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하도급 계약시 부당특약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특약 금지’ 조항을 신설하게 된다. 이로써 원사업자가 부당특약을 설정할 경우 특약조항의 삭제, 수정 등 시정명령은 물론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마련된다.

과거 현장설명서에 명기되지 않은 사항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계약이행 중 발생한 민원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지고 처리한다는 특약으로 인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부담하던 관행들이 건설 하도급분야에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부당특약 설정을 제한하는 입법이 가시화 되었고 2013년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하도급 계약시 부당특약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특약 금지’ 조항을 신설하게 된다. 이로써 원사업자가 부당특약을 설정할 경우 특약조항의 삭제, 수정 등 시정명령은 물론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마련된다.

다만 법률 개정 전 대법원이 국가계약법령상 의무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 ‘물가변동 계약금액조정’ 조항을 배제하는 계약조건에 대하여, 국가계약법령과 다른 내용으로 일부 불이익을 준다고 하여 그 내용이나 효력을 반드시 부인할 것은 아니고 부당특약이 되기 위해서는 다소 불이익한 정도를 넘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는 것일 경우 국가계약법의 부당특약에 해당하여 효력이 없다. 부당특약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특약에 의하여 계약상대자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계약체결과정,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부당특약이 성립되기 위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법원이 던진 여러 법령의 미비를 보완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부당특약이라는 법률적 근거를 통해 계약업체가 해당 조항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제도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