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착오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금의야행

1.저승사자와 장수

어느 날 저승사자가 명을 다한 장수를 잡아가려고 했다. 우연히 자신의 명이 다한 것을 알게 된 장수는 저승사자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자가 무서워하는 탱자나무를 담장 사방에 심어 근접할 수 없게 했다. 저승사자는 사흘 동안 집 밖에서 서성이다가 조그만 틈을 발견하고는 가까스로 장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장수를 잡아가려던 저승사자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장수가 머리에 귀신을 막아 준다는 은비녀를 꼽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안방 마루 밑에 숨어 장수가 머리에서 은비녀를 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드디어 장수가 머리를 감으려고 은비녀를 빼자 저승사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장수를 줄로 묶어 저승으로 끌고 갔다. 놀랍게도 장수는 가솔들에게 자신이 혹시 죽더라도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7일간은 시신을 땅에 묻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그러나 장수가 했던 말을 반신반의한 가족들은 시신을 땅 속에 묻었고 장수가 자신의 약속대로 저승사자를 따돌리고 다시 돌아 왔으나 땅속에 있는 자신의 몸을 어찌하지 못해 다시 이승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아무리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해도 결국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유교가 정치와 시대사상을 지배하고 여타의 신앙을 위축시킨 시대였지만 사후의 세계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로 사람이 죽은 뒤에 심판을 받는 세상을 의미하는 명부(㝠府)에 대해서는 불교와 민간신앙에 의존했었던 것이다. 즉 조선의 불교와 민간신앙에는 죽음을 위로하는 역할이 인정되었고 저승사자와 명부의 세계는 그러한 종교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재밌는 것은 이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에게도 업무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경래라는 참봉이 있었다. 중병을 앓아 정신이 혼미하였는데 어느 날 밖에서 큰 소리로 저승사자가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 하였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니 다짜고짜 따라오라고 하여 그의 뒤를 쫓아갔더니 몇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 저승이라는 곳에 당도하였다. 가운데의 판관이 “네가 박영래냐”라고 물었다. 박 참봉은 “아닙니다. 저는 박경래입니다”라고 말했고 판관은 살생부를 뒤적이더니 놀라면서 저승사자를 혼냈다. “예 이놈 박영래를 잡아오라고 했더니 박경래를 잡아왔구나. 박경래는 8년 뒤에나 올 사람이니 다시 데리고 가거라”. 저승사자는 박 참봉을 데리고 나와 다시 집으로 보내 주었다. 집에 돌아 온 박 참봉이 아들에게 박영래라는 사람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산 너머 마을에 박영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박 참봉이 다시 살아난 날 죽었다 하였다. 저승사자의 착오는 생각보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마을에선 비슷한 이름을 짓지 말라고 했고, 저승에서 살아 돌아오면 발자국을 쓸어서 그 흔적을 없앤다는 민간의 이야기도 구전된다.

법률적 의미의 착오

2. 법률적 의미의 착오

착오란 의사표시를 한 사람이 내심의 의사와 실제로 표시되는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연대채무가 단순 채무와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여 연대채무자가 될 것을 승낙하거나, 10만 원이라고 써야 할 것을 100만 원이라고 써 버린 오기도 모두 착오의 일종이다. 착오가 있었다고 하여 그러한 의사표시를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것도 사회의 안정을 깨는 것이지만, 잘못된 의사표시를 그대로 유효하다고 하는 것도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래서 민법은 일정한 경우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대법원은 그 요건을 “일반인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섰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거라 여겨질 정도로 그 착오가 중요한 부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착오는 개인 간의 거래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 정부와 기업이 당사자가 되는 조달에서도 많은 문제가 된다. A라는 금융회사가 캐나다 왕립은행으로부터 매수 주문을 내어 달라는 위탁을 받고 주문을 하는 과정에서 0.8원으로 입력해야 하는 매수가격을 잘못하여 80원으로 입력하게 된다. 매수 주문을 받은 증권사는 80원이라는 가격에 매도를 하였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A는 거래 취소를 하고 매매대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증권사는 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A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거래를 취소할 수 없다며 매매대금을 돌려주지 않았고, A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관련 업무규정에 착오로 낸 매수 주문을 취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해도 거래를 취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부분을 잘못 입력한 거래대금은 돌려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며 A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전산입력으로 이루어지는 금융, 증권 분야에서의 주문 착오는 위 사건 외에도 꽤나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증권회사 주문착오 방지대책”에는 연간 2,000여 건에 달하는 주문착오가 발생하고 있고, 특히 가격 입력 오류가 큰 비중을 차지하여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방지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주문 착오를 방지하기 위해 매수주문과 매도주문의 색깔을 달리하고 2단계로 일정 금액 및 수량을 초과할 경우 Pop-up창을 통해 경고를 한다는 방안은 이때부터 나왔던 것이다.

입력 착오의 구제

3. 입력 착오의 구제

전자입찰은 공공조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조달업체의 직접 비용을 절감한다는 이유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00년 11월 미국,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정부조달 전자입찰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순기능과 더불어 부작용도 존재하였고 제도 도입 초기에는 전자입찰 해킹과 대리입력을 통해 입찰질서를 해치는 일도 발생하였다. 다른 시각에서 전자입찰의 미비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가 입찰가격의 입력 착오문제였다. 과거 수기입찰의 경우에는 설령 입찰가격을 잘못 기재한 입찰서를 제출하더라도 개찰 당시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입찰현장에서 취소의사를 표시하면 낙찰로 인정되는 결과를 면할 수 있었지만, 전자입찰이 도입된 당시 한번 입찰가격을 잘못 입력하면 낙찰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입찰참여 업체가 가격을 잘못 입력하여 저가로 낙찰을 받은 경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는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 없어 계약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에는 국가계약법상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 사유인 ‘정당한 이유 없는 계약 미체결’에 해당되어 불이익 처분을 받는 악순환이 빈번하였다.

그런데, 2013년 제정된 「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에 입력 착오에 대한 구제 수단이 마련된다. 원칙적으로 입찰자가 제출한 전자입찰서는 교환, 변경 또는 취소할 수 없지만, 입찰금액 등 중요부분의 기재 오류를 이유로 입찰자가 개찰 전까지 입찰 취소 의사를 표시하면 당해 입찰서를 무효처리토록 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법원도 입찰금액을 착오로 기재한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계약체결을 포기한 업체에게 부과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하여, 입찰금액에 현저한 오기가 있고 계약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해친다고 볼 수 없는 제반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획일적인 처분 부과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저승사자도 착오를 일으키거늘 사람이 하는 일인 게야. 이유 있는 착오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