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행위와 의무고발요청제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금의야행

1.금의야행

중국 진나라 말기에 유방과 천하를 놓고 다투었던 명장 항우의 이야기이다. 항우가 진나라를 격퇴하고 그 유명한 아방궁을 비롯하여 모든 궁전을 불지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때 수하의 장수 하나가 말하기를 “이곳 진나라 땅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히고 땅이 기름지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라고 권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항우는 이미 불에 타 폐허가 된 진나라가 싫었고 또한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전과를 뽐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 “부귀를 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 줄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 말이 사기[史記]의 항우본기에서 의수야행[衣繡夜行]이라 쓰였지만 후에 변하여 금의야행이 되었다. 항우의 말에서 비롯된 금의야행은 “자기가 아무리 잘 하여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금의야행은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자신의 취임사에서 그 의미의 되새김을 당부하였던 고사성어이기도 하다. 공정위는 흔히 경제검찰로 불리우며 기업의 경제범죄에 관한 한 전속고발권을 행사하여 왔고 그 사정거리 안에 있는 기업들이 좋아할 리 없다. 반대로 내놓은 처리결과가 여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봐준 것이 아니냐는 비난과 오해를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스스로 공정위를 ‘외딴 섬’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금의야행은 공정위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말로 회자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의 변화

2.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의 변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29조는 “담합,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위반행위를 한 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고 규정함으로써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명시하고 있다. 본래 ‘고발’이란 법률상 고소권자 또는 범인 이외의 제3자가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형사처벌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발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수사기관도 고발이 없더라도 공소를 제기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이 부여한 전속고발권으로 인해 적어도 공정거래법상의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고발 없이 제기된 공소에 대해서는 법원이 소송조건의 불비를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검찰 기소권 침해 또는 공정위의 대기업과 권력 편향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였다.

연혁적으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은 1980년 12월 31일 공정거래법이 제정되고 1981년 4월 1일 시행된 처음부터 규정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공정거래사건 소관부처였던 경제기획원 장관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후 공정위는 1997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신설 입법하였고 담합사건의 경우 자진신고자는 공정거래법상의 책임으로부터 면제 또는 감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행사하여 자진신고자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음으로써 형사처벌을 면제시키는 실무적인 관행을 형성하여 왔다. 공정위의 입장에서는 자진신고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였지만, 검찰의 입장에서는 기소권 행사가 공정위의 고발 여부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검찰의 기소 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어찌되었건 검찰로서는 기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 제129조 제3항에 규정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행사하여 공정위의 고발을 받은 뒤에 기소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공정위와 검찰의 갈등을 표면화하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증폭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2008년 석유화학과 관련된 수인의 사업자들이 담합한 사실이 일부 사업자의 자진신고로 인정되었고, 공정위는 실무 관행처럼 자진신고를 한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형사고발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이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행사하여 고발하지 않은 사업자들을 기소하였고, 결국, 공정위의 전속고발권과 충돌하는 검찰 기소의 법적 가능성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이 전속고발권을 규정하고 있는 이상 명문의 규정도 없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검찰 기소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역설적으로 자진신고자 감면요건의 강화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더욱 본격화된 계기가 되었다.

의무고발요청제도의 확대와 동향

3. 의무고발요청제도의 확대와 동향

이처럼 전속고발권의 폐지 내지 개선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국회는 2013. 4. 22. 불공정거래 관련 고발요청권을 감사원장, 조달청장,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확대하고, 공정위가 고발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였더라도 이들 기관의 고발 요청시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고발을 해야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위와 같은 공정거래법 개정이 처음부터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법 개정 당시 중소벤처기업부는 고발 전담조직을 꾸려 중소기업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하였고, 감사원과 조달청 역시 권한이 생긴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하였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게 운용되었다. 예컨대 조달청이 법 개정 이후 2019년까지 의무고발요청을 행사한 건은 7건에 그칠 정도로 제도의 활용은 미비하였다. 그런데 2019년 이후 제도 활용에 소극적이고 의무를 해태한다는 국회의 지적이 계속되자 중소벤처기업부와 조달청은 의무고발요청 기준을 만들고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담합, 하도급 위반 등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고발 요청을 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공정위 단계에서의 자진신고나 적극적인 소명을 통해 형사고발을 면제받더라도 다시 중소벤처기업부나 조달청 등의 심사를 통해 형사고발로 이어지는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오랜 변화의 연혁을 가지고 있는 전속고발권은 현재에도 그 폐지에 대한 찬반론이 대립하고 있다. 현 정부 법무부와 공정위가 협의를 거쳐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중대한 담합행위가 발생할 경우 공정위 고발 없이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속고발제 폐지안을 합의하고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을 추진했지만, 검찰개혁 문제와 맞물리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시 없었던 일이 되었다. 새 정부를 준비하는 인수위에서도 전속고발권의 개선이나 폐지 목소리는 여전히 흘러 나오고 있다. 제도의 변화는 이미 야행[夜行, 남 모르게 행사함]이 될 수 없다는 면에서 앞으로의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