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 저자 가키야 미우   |   출판 들녘 >

글. 양원희

  • 윽~ 제목만 봐도 짠내 풀풀.
  •   ‘노후자금은 이렇게 마련하라’는 자기개발서를 기대할까봐 미리 장편소설임을 밝혀둔다. 그런데 신선하다. 노후자금을 이렇게 마련하라는 얘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얘기일 게 99% 틀림없다. 다른 집은 노후자금을 어떻게들 마련하지? 하는 마음으로 옆집 들여다보듯 보니, 이 책 참 흥미진진하다. 역시 뚜껑 열어보면 별 인생 없다. 현실적이고 생활력 강한 아츠코 씨나, 허례허식이라고는 1도 없는 사츠키 씨부터 우아하고 부티 나는 죠가사키 선생님과 티 한잔을 해도 호텔에서 마시는 미노루 씨까지 알고 보니 노후를 걱정하는 것은 똑같다. 심지어 이 소설은 바다 건너 일본의 이야기이니, 사는 곳과 남녀노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노후는 한 번쯤은 걱정이 될 것이다.

     이야기는 아츠코 씨가 딸의 결혼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큰 마트를 하고 있는 부자 사돈의 수준을 맞추려니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런 자리에서 기죽고 싶지 않은 남편과 형편에 맞게 결혼시키고 싶어 하는 아츠코 씨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츠코 씨는 차라리 가전이나 집장만에 돈을 쓰면 모를까 예식 자체에 돈을 그렇게나 쓰는 것은 도저히 이해불가다. 딸 기죽이고 싶지 않은 아빠의 마음이나, 야무지게 살림해온 덕에 아이 둘을 사립대학에 보내고 장기주택융자금 상환도 2년 남은 엄마의 현실적인 고민 둘 다 너무 공감이 간다.

     세 아들 장가보내야 하는 나는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애들 집도 벌써 걱정이고 나의 노후도 걱정이다. 특히 골다공증이 있는 나는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밀고 다니는 할머니들 볼 때마다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저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교육비다. 체력은 꺾이고 들어가는 돈은 늘어가고, 진짜 존 리 선생님 말씀대로 애들 학원비를 모아서 복리 붙는 주식에 넣으면 걱정을 좀 덜 텐데... 나는 왜 ‘교육’에 미련을 못 버릴까? 왜 이렇게 합리적이지 못할까? 애들 성적이 좋은 어느 날은 역시 ‘교육’은 ‘백년대계’이고, 성적이 기대 이하인 날은 ‘교육’같은 ‘허상’은 없는 것 같고, 일희일비하는 나는 혹시 다중인격이 아닐까?

     이 소설은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나 장례의 문제 또한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누구를 위한 결혼식일까’에 이어 ‘누구를 위한 장례식일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훌륭한 조각이 돋보이는 50만 엔의 편백나무 관에서부터 4만 엔의 오동나무 관까지 가격 순으로 소개되는 상조회사의 설명에, 사람들이 관의 모습만 보고도 비싸고 싸고를 금세 알 수 있냐는 아츠코 씨의 품위 없는 질문에 실소는 터져 나오지만 이것 역시 굉장히 공감이 간다. 다만 나는 나의 장례식에는 꼭 오동나무 관을 쓰라고 자식들한테 미리 얘기해두고 싶다.

     노후 자금으로 6천만 엔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 돈으로 6억이 좀 넘는 돈이다. 이걸 모으기도 부족한 마당에, 애들 좀 크고 이제 숨 좀 돌렸다 싶을 때, 딸의 결혼식 비용과 시아버지의 장례식 비용에 부부가 동반으로 해고를 당한 아츠코 씨의 삶은 예측불가의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정말 우아하고 그야말로 고품격이었던 죠가사키 선생님의 최후와 재규어를 몰고 고급 브랜드의 옷을 걸친 미노루 씨의 예상 밖의 이면이다.

     작가는 노후자금을 모으기 위해 허례허식을 버리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혹은 지지리 궁상떨지 말고 한번 뿐인 인생, 요즘 아이들 말로 ‘플렉스’ 하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그저 자기가 중요시하는 가치대로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면 된다. 단지 겉만 보고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하거나 그것으로 내 삶에 영향을 받지는 말자는 것, 그리고 척 하는 것만 버리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노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자식 간에, 이웃 간에 겉모습과 편견을 넘어선 관계와 살핌이 아니겠냐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작가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지 각자 한번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