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따뜻함 한 젓가락, 위로 한 스푼,
휴식 한 잔’

< 불편한 편의점   |   저자 김호연   |   출판 나무옆의자 >

글. 양원희

  •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을 읽고 책을 덮는데, 마음 한켠에 따뜻한 눈물이 맺혔다. 소설은 눈물이 멈춘 것으로 끝이 났는데, 독자는 눈물이 맺히는 아이러니다. 제목도 아이러니한 <불편한 편의점>이다.
     무언가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소설보다는 자기개발서를 즐겨 읽었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 주는 위로보다 자기개발서의 세상사는 법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하나 놓칠세라, 정성들여 꾹꾹 마음에 담아가며 읽었다. 나에게 위로와 쉼표가 필요했던 것 같다.
  • 내가 누리는 이 편의는 누군가 불편을 감수해 주었기에 누릴 수 있다.
  •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내가 누리는 이 편의는 내가 돈을 주고 사서 누릴 수 있는 가치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더 편리하게 살려면 “더더더더” 달리고 “더더더더” 갖는 것만을 가르쳤지, 남의 편의를 위해 너의 불편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질 못했다.
     <불편한 편의점>의 염 여사를 비롯한 입체적인 여러 인물들이 나에게 계속 얘기하는 것 같았다. 삶의 고단함이 물론 있지만 그래도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편협한 편리함에서 좀 벗어나, 사회의 불편한 곳도 좀 들여다 봐달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노숙자였던 독고 씨의 노숙 전 반전직업이 밝혀지면서, 어느 누구의 인생도 장담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는 것. 그러기에 겸손하게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내가 하찮게 대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자꾸 인사이동에서 미끄러지는 경만 씨가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볶음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할 때는, 내가 달려가서 한 잔 따라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살아온 마흔넷 인생, 동갑이라 더 정이 갔고, 써야 할 돈은 늘고 체력은 꺾이는 그 상황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
  •  모든 사람은 각기 절대치의 고난이 있다. 저 사람은 나보다 행복해 보여도, 그 사람 나름대로 인생의 고충이 분명 있고, 뚜껑 열어보면 진짜 별 인생 없다.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꽃같이 예쁜 연예인들도, 돈과 인기, 외모 모두 가진 것 같아서,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만큼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악플러들의 일종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가 꺾이는 것을 우리는 종종 봤다.
     나에게도 자기 힘든 얘기를 하루 종일 톡방에 쏟아내며,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애용하는 노처녀 친구가 있다. 이해하면서도 가끔 지친다. 친구는 내가 제때 결혼해서, 제때 아이 낳고, 돈벌어오는 남편 있고,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지 않냐는 마음이 늘 깔려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저 그런 아줌마의 하소연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만 너무 힘들고 고단하다. 내가 지금도 틈틈이 애들 보면서 주방과 책상을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게 글을 써내려가고, 그 사이에 자기 얘기도 들어주고, 사춘기 아들과 얼마나 감정을 소모하는지,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 평범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하는지는 모른다. 늘 자기 할 얘기만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끝이다. 내 성격이 물러서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여기저기서 많이 하다 보니, 이 말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했다는 이 말은 각자의 삶에도 서로의 삶에도 적용된다.

    “결국 삶은 관계이고 관계는 소통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
  • 불편한 편의점
  •  ‘편의점’이란 곳은 참 신기한 곳이다. 밤에 무언가 급히 사야할 때는 너무 필요한 곳이고, 낮에는 일반 마트보다 비싸다는 생각에 폭리를 취하는 나쁜 곳이다. 때로는 맥주 네 캔에 만원과 원 플러스 원의 행복이 있는 곳이고, 참참참의 위로가 있는 곳이다. 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새벽부터 밤까지 여러 인간의 군상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곳이다. 어떤 때는 편리한 곳이고 어떤 때는 불편한 곳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마치 인생 같다고나 할까?
     내 인생에도 여러 인간의 군상들이 드나들고 있고, 나는 어쩔 때는 다중인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희일비한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 아플 때 건강을 돌아보게 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이렇게 역설적인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각자의 인생이 되고, 따로 또 같이 굴러간다. 빠르게 굴러가는 우리의 여정 중에, <불편한 편의점>에 잠깐 들러 따뜻함 한 젓가락, 위로 한 스푼, 휴식 한 잔 하고 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