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과 적극행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공공조달과 적극행정

1.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기원전 722년 유대지역은 호전적인 아시리아에게 정복된다. 아시리아는 자신들이 점령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유대지역에 살게 하였고 이들은 그곳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 ‘혼혈인’을 낳았다. 혼혈인들은 유대의 신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들을 섬겼고,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옛 지명을 따서 사마리아인이라 불리웠다. 시간이 흘러 유대지역의 남쪽에는 이국으로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쌓고 유대를 재건하게 된다.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자신들도 유대의 신을 섬기므로 재건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을 혐오하였고 그들이 유대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만의 신전을 세우고 예배를 드렸지만, 기원전 128년 유대인 지도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신전을 파괴하고 사마리아인이 유대의 혈통이라고 얘기하거나 유대의 신에게 경배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처럼 수백 년간 지속된 유대와 사마리아의 악연은 예수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살았던 지역의 북쪽은 갈릴리, 남쪽은 유다, 중앙은 사마리아로 나뉘어져 있었고 유대인이 갈릴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가로지르는 것이 빠른 길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혐오한 탓에 일부러 길을 우회하여 다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수가,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유대인들은 모른 척한 반면에 그토록 혐오하던 어느 사마리아인이 극진히 돌보아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얘기하며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 대한 자비와 친절을 설파하자,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이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2. 선한 사마리아인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위험에 처한 자들에 대한보호 법률로 발전하게 된다.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행한 조치가 본의 아니게 환자를 사상에 이르게 하거나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게 되더라도 행위자에게 고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책임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법이 탄생하였고 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인지한 경우에는 자신에게 위험이 없는 한 타인을 구조해 주어야 할 의무를 포함하는 법이 생겨났다. 프랑스 형법의 내용이고 이를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 가칭하게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점차 범위를 넓혀 인터넷상의 불건전한 정보를 규제하고자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상식적인 노력을 하였고, 그러한 행위로 일부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보다 정보 규제의 기술적 한계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1996년 개정된 미국 통신법 조항의 내용이다.

 우리나라 역시 2008년 6월 13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지를 하다 경과실로 인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손해를 입힌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감면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반영한다. 타인의 위태로운 상황을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가 결과가 잘못되어 도리어 송사에 휘말리게 되는 억울한 일은 최소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

3. 공공조달 영역에 대한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반영

 만약 공무원이 공공조달과 관련한 적극적인 업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절차상 하자 또는 민원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에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2008년 12월 감사원 내부훈령 형식으로 공무원의 적극적인 업무 추진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행위가 공익에 부합하거나 해당 업무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 업무처리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인정되는 경우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에 대해 불이익 처분요구를 하지 않거나 감경해 주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이른바 ‘적극행정 면책제도’이다. 제도 시행 초기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난의 소리도 있었지만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긍정론이 많았다.

 그런데, 논란 끝에 마련된 적극행정 면책제도의 활용과 공직문화 변화는 생각보다 저조하였다. 이에 2015년 감사원은 ‘적극행정 면책’의 시행근거를 감사원법과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등 2개 법률로 상향시키고 “고의 또는 중과실 없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감사 대상자에 대해서는 징계요구 등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률 조항에 명확히 하면서 적극행정 면책제도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2019년에는 공공기관이 업무를 처리하기 전 규정이 불분명하거나 선례가 없어 적극행정이 주저되는 사안에 대해 감사원의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컨설팅 제도를 도입한다. 이후 사전컨설팅 결과에 따라 행한 업무에 대하여는 책임을 감면하고 있고, 관련 사례를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다. 공공조달과 관련한 이슈도 그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예컨대 국가계약법상 추정가격 기준으로는 경쟁입찰에 의하여야 하지만 학교가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고 급식 인원수가 적어 획일적인 경쟁입찰을 통해서는 업체 선정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급식 제공의사를 표시한 특정 업체와 급식용역 수의계약을 체결하려는 사안에 대해 감사원은 수의계약의 필요성, 타당성을 인정하였다. 기존 상용차를 생산하는 업체로부터 설계도면 및 기술지원을 받아야 원활한 사업추진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경쟁입찰이 가능함에도 해당 업체와의 수의계약 체결에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전컨설팅 제도는 점차 그 활용범위를 넓히고 있고 조달담당공무원의 적극행정을 유도하는 제도로서 정착해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동쪽 샌디에고 지역에는 쿠야마카 락스퍼라는 야생꽃이 자라고 있다. 한때 락스퍼가 멸종위기에 처하자 환경당국은 검토 끝에 이를 희귀종으로 등록하고 집단 자생지에 사람은 물론 소와 같은 가축의 접근을 일체 차단하는 강제보호조치를 취하였다. 수년이 흐른 뒤 보호지역의 락스퍼는 주변의 높게 자란 풀로 인해 햇빛이 차단되어 번성하지 못한 반면에 보호지역 밖에서 자란 락스퍼는 일부 소들의 먹이가 되었지만 번성하였다고 한다.

 규제는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에는 수긍할 수 없으나 틀에 얽힌 규제는 규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