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2022년 새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어크로스 >

글. 양원희

나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다. 지독한 허세 같지만 진짜 그렇다.

종교가 있기도 하고, 무병장수를 가장 원하기야 하지만, 죽음 자체가 그렇게 두렵진 않다.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사는 것이 가장 두렵다.
마스크를 쓰고, 어디 다니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학교와 회사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면서, 어영부영 또 한 해가 갔다. 글로벌 커피숍에서 제공하는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스탬프를 가열차게 모으고 있는가? 왠지 새해에, 새 다이어리에, 새로운 계획들을 적어두면, 무언가 더 알차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 같지만 착각이다. 나도 그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많이 적었었다. 지금은 뭘 적은지도 기억나지 않고, 그 다이어리는 집의 어딘가에서 구름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른 것보다 ‘죽음’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 살아가는 일은 죽어가는 일이다.
  •  로마 시대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에 불과하다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한 이 책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위트 있는 글쓰기로 인기 있는 ‘칼럼계의 아이돌’이다. 항상 나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담고 싶은 내용은 연필로 줄을 쳐가며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읽다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를 얼마나 많이 써놨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저 그런 ‘ㅋㅋㅋㅋ’는 아니다. 풍자와 해학이 있으면서 깊이도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풀려날 것이라고.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단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단다.
  •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오늘’은 어제 옥상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지 않았던 ‘내일’
  •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는 글귀를 책상 위에 써 붙이며 의지를 다잡았던 고3 시절이 생각났다. 사회가 그때와는 너무 다르게 변했다 했는데, 이 글귀도 저렇게 바뀌어 버렸다. 우리가 열망했던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이젠 너무 낯선 구호가 되어 버렸다. 표면적으로나마 민주화나 경제발전은 이룰 만큼 이뤘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절, 아침을 열 때는 나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미 죽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고,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죽음이 아직이라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으로, 혹시 남아있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해가 바뀔 때 즈음 되면, 여기저기서 새해 덕담과 계획을 묻는 질문이 쏟아진다. 행복은 마음에서 온다는 추상적인 말들도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인간을 의미 없는 정신승리만 하게 하는 사탕발림이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은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애써 예측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과도하게 진이 빠지기 십상이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날로 높아지는 이혼율이 안타까워 ‘가정중수’를 외치는 어느 목사님의 외침이다. ‘행복’을 목적으로 결혼하면 그 결혼은 오히려 ‘지옥’이 된다. 마찬가지로 저자도 행복의 계획은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지 역설했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더 쉽게 불행해진다. 차라리 ‘왜 디저트가 맛이 없지’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단다. 이는 작은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진짜 행복이다.
  • 아침에는 삶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니, 결국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게 잘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선행 조건이다. 요즘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웰 다잉 Well-Dying’이라고 부른다. 잘 죽어가는 것이 잘 살아내는 것이다.
     2022년 새해에는 죽음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