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잘못된 약관의 파국

 추전국시대 노나라 정공은 공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아 부흥하였고 노나라와 경합하던 제나라 경공은 이를 크게 우려하였다. 제나라의 대부 여미는 경공에게 공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장차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충언하며 “사람이 배가 부르고 따뜻하면 마음이 해이해질 것이니 미녀들을 보내 정사를 소홀케 하면 공자는 그 모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노나라를 떠날 것입니다”라고 방책을 내었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제나라 전국에서 80명의 미녀를 선발하여 노나라에 보낸다. 노나라 정공은 제나라의 의도가 궁금하였지만 재상 계사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우리 노나라를 경외하여 바친 것이니 이를 거절하면 외교관계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차츰 미녀에 빠진 노나라 정공은 초심을 잃어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공자마저 찾지를 않았다. 공자는 탄식을 하였고 제자 자로는 노나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떠나야 한다고 공자에게 간언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조만간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대제가 있으니 그때까지만 지켜보자고 하였다. 대제의 날이 왔고 정공이 참석하였지만 대충 제를 올리고는 자리를 떠나 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공자는 결국 관직을 모두 버린 채 노나라를 떠났고 주색에 빠진 왕과 신하들로 인해 노나라의 국력은 점점 쇠약해져 간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명장 손무가 기록한 병법서 손자병법의 「삼십육계」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계책 3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중 19계는 ‘솥단지 밑의 땔나무를 꺼낸다’라는 의미의 계책, 부저추신(釜底抽薪)이다. 부저추신은 강한 적을 만나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 공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나라 대부 여미는 노나라의 세를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대신 부흥의 핵심이었던 공자가 스스로 노나라를 떠나게 만드는 부저추신의 계책을 사용했던 것이다

 솥의 물이 끓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한 방법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다. 차가운 물이나 얼음을 더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더 이상 장작을 넣지 않아 자연히 불기운이 사그러지게 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솥단지 밑의 장작을 슬며시 빼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끓는 물을 분쟁에 비유한다면 이처럼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은 분쟁의 상대와 모습 그리고 단계에 따라 실로 다양하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소송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정부조달 입찰과 계약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제는 전통적인 소송 외에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 조정, 국민권익위원회 고충민원, 공정거래조정원 조정, 옴브즈만, 감사원 민원 등 다양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정부는 2012년 국가계약법을 개정하여 부당특약, 입찰참가자격, 계약보증금, 계약금액 조정, 지체상금 등 정부 조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 사안에 대해 조정을 구할 수 있는 국가계약분쟁조정제도를 마련하였다. 분쟁조정의 절차는 우선 입찰, 계약 과정에서 발주기관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자가 그 행위를 취소하거나 시정을 구하는 이의신청을 제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의신청에 도 발주기관이 응하지 않는 경우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심 성격의 조정을 청구할 수 있고 위원회는 청구인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발주기관의 행위를 취소하거나 손해배상을 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는 고충민원 제도가 있다. 여기서 고충민원이란 행정기관이 위법, 부당한 처분을 하거나 불합리한 행정 제도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반 사실을 조사 후 발주기관에게 시정을 권고하는 제도이다. 조달 절차에 있어 발주기관이 법령에 위반하거나 정당한 근거 없이 계약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 역시 고충민원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법률상 권고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나 시정권고를 받은 행정기관은 30일 이내에 그 처리결과를 국민권익위원회에 통보해야 하고,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소명해야 하므로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진다. 실례로 조달청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수용하여 부당한 처분을 취소하거나 내부의 불이익 규정을 개정한 다수의 사례를 가지고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기업 역시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일정한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사업자의 지위를 가진다. 이는 발주기관이 지위를 남용한 부당한 거래조건의 요구, 정당한 이유 없는 계약금액의 감액 등 불이익을 주는 경우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여 거래상 지위의 남용 등 공정거래법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공 발주기관들은 대부분 감사원의 피감기관이라는 점에서 발주기관으로부터 법령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조달업체들은 감사원 민원제기를 통해 해당 발주기관에 대한 감사가 개시되도록 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해결방안들이 분쟁의 유형, 상대방 그리고 계약의 진행 단계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활용된다면 가마솥의 끓는 물을 잠재울 수 있는 부저추신의 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무턱대고 소송으로 나아가기 전에 대안분쟁수단을 거쳐 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은 발주기관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다만, 어떠한 해결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수단일 될 것인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전략이 필요함을 유의해야 한다.